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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11-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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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본을 둔 예천임씨는 임춘(林椿)선생을 시조로

기사입력 2006-01-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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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씨(林氏)는 모두 24관(貫)이 있는데 서기 900년경에는 모든 임씨가 팽성 임씨(彭城 林氏) 단본으로 사용, 팽성이 옛 평택의 고호이므로 1000년경부터 1100년까지는 모든 임씨가 평택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 감천면 덕율리 소재한 옥천서원

서기 1100년경 팔급공(八及公)의 6대손 몽주공(夢周公)이 아홉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여기서 1차 분관이 많이 이루어 졌다.  항렬은 아름다울 미(美)로 구미손(九美孫)이라고 한다.

 

▲ 옥천서원 명교당

 

두번째 분관은 평택관에 충정공(忠貞公) 5미손(五味孫)인데 연대로 보아 서기 1300년경 충정공 셋째 제미공(齊味公)에서 장흥관(長興貫), 넷째 세미공(世味公)에서 조양관(兆陽貫)이 분관되고 1400년경 조양관에서 임천(林川), 임피(臨陂), 전주(全州), 보성, 안동(安東), 임하(臨河) 관(貫)이 분관되었다.

 

▲ 옥천서원 천도문

계미공(季美公)의 후손 예천임씨 중시조 서하공(西河公)에서 경주(慶州), 양양(襄陽), 밀양(密陽), 안의(安義) 관(貫)이 분관하고 아직도 옥야(沃野), 조양관에서 분관하지 않은 안동(安東)관은 상계 정립이 되지 않아 계속 분관 계보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예천임씨(醴泉林氏)세거지향(世居之鄕)

 

예천에 본을 둔 예천임씨의 시조 임춘(林椿)선생은 고려 의종 때 서하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

 

가전체소설 '국순전'과 '공방전', '서하유고집'을 남겼으며 감천면 덕율리 옥천정사에 제향되었다.

 

임춘선생을 승봉하기 위해 매 년 5월5일 전국대종회를 개최하고 있다.

윤현숙 기자 ()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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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to dlarkgus
    2010- 01- 23 삭제

    임팔급(임씨 시조)--->임몽주--->임계미--->임광비--->임춘(예천임씨 시조)

  • dlarkgus
    2008- 09- 16 삭제

    예천임씨시조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