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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6-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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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눈물...

기사입력 2022-10-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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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은 참 이쁘다. 옥에는 티가 있지만 가을 하늘은 티하나 없이 맑디 맑다. 맑은 하늘은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눈이 시리다. 파란 하늘만으로도 10월은 박수 받을 만한 달이다시골집 텃밭 울타리에 나팔꽃이 호박덩굴과 어우러져 가을을 나고 있다. 옥수수는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길게 누웠고, 갈색으로 변한 고추단은 야외 아궁이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려고 누웠다. 주황색으로 단장한 감들이 사랑에 굶주린 새들을 부른다. 감을 배경으로 사랑놀음하는 새들은 귀가 아플 정도로 지져댄다. 김장채소가 차곡차곡 가을 햇살을 받아서 제법 튼실하게 자랐다.

솎은 배추, 무우는 아삭한 것이 비빔밥에 제격이고 삼겹살과 함께 해도 환상적인 궁합이다벌레 먹은 배춧잎을 볼 때마다 속은 상하지만 숭숭한 구멍 몇 개 있다고 해서 생육에 치명적이지 않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10월에는 배추 크는 속도가 벌레가 먹는 것보다는 더 빠르니깐 그래 너희들도 좀 먹어라하고 그냥 놔둔다. 가을 텃밭이 주는 풍성함이다시골집 어귀 황금 들녁이 낙동강 너머 불타는 저녁노을을 품으니 환상의 그림을 그려낸다. 들녘은 따가운 가을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황금색이 점점 짙어만 간다.

두 번의 큰 태풍을 이겨낸 벼이삭이 부끄러운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가을바람에 춤을 춘다. 농익은 벼이삭 위로 고추잠자리가 비상한다지난 주말, 처서가 지난 8월 중순께 담근 막걸리를 걸렀다. 10리터 짜리 담금통에 한가득이다. 채주와 숙성을 거쳐 18주가 돼야 완성되는 삼양주이며, 프리미엄급 전통주이다. 술맛을 아는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술맛보게 해달라고 보챈다. 지금 마셔도 쾌 훌륭한 작품이지만 6주의 숙성을 거쳐야 명주가 되기 때문에 김치냉장고에 숙성중이다. 1700~800정도 술이 나오니 쌀 먹는 하마다. 쌀 소비에 일조를 했음은 물론이다.

한때는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와인 한잔 하는 것을 멋이라 여기며 자랑한 때도 있었다. 또 한때는 일본술인 사케를 마시며 사케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다. 그런 유행이 지나 이젠 우리 전통주가 유행이다. 술자리에서 자신이 즐기는 전통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지적인 것처럼 돼버렸다. 우리 전통주는 쌀을 매개로 한 고두밥과 누룩이 중심이다. 다양한 미생물이 증식된 누룩을 이용하기에 풍만한 맛과 향이 있다. 전통주의 주재료인 쌀이 요즘 예사롭지 않다.

쌀이 울고 있다. 산지 쌀 값이 작년대비 25%가량 하락했고, 2022년산 수매가 코앞인데 농협미곡처리장마다 지난해 생산한 벼가 꽉꽉 차 있어 신곡을 받을 공간조차 없다고 한다. 30년전 1인당 쌀소비량은 119.6이던 게 작년에는 56.9으로 절반이나 하락했다. 우리 국민이 하루에 한 공기 반을 먹는 셈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한국인은 하루 쌀값으로 414원을 쓴다. 2019년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하루 커피 2잔을 마시는 사람이 31.2%, 3잔을 마시는 사람도 21.8%로 응답자들은 커피값으로 하루 평균 4178원을 지출한다고 한다.

이는 쌀값 414원을 기준으로 거의 10일치 쌀값이니 쌀이 울만도 하다. 쌀은 우리 농업의 중심이고 식량안보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산업이다. 쌀의 수요를 북돋아 줄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가을이 오면 가을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3(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서민들은 세상물정을 사납게 겪는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직접 빚은 막걸리 한잔하면서 가을 노래와 함께 쌀의 눈물을 훔쳐 줄까 한다.

 

정차모 기자 (jcm54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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