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예천인] 젊은 시절 안국동에서 '이봉상회화연구소'를 운영했던 박서보 선생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 시절은 고생이라는 말이 평범할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오직 미술로 승부를 걸었던 선생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겼었다. 그것이 화가로서의 정도(正度)였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다짐을 떠올리며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붓을 든다. 1940년 12월 29일 예천읍 왕신동에서 아버지 이규목, 어머니 김월순씨 사이에 4남5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 이태현 화가는 1953년 예천서부국민학교(현 예천초등학교), 예천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안동사범(본과)학교, 1963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청주 서원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예술대학장, 예술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3년 교토세이카대학 객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청주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인 이태현 화가는 홍대 2학년 당시 4.19, 3학년 때인 1961년 5.16군사정변을 맞았다. 대학재학 시 이종우, 김환기, 이봉상, 손응성, 이종무, 김숙진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어 1970년 12월 평생의 반려자인 우영희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3녀를 두었다. 추상적, 개념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여러 실험적 방법을 거쳐 구체적, 실천적인 것으로 옮겨가며 네오다다나(제2차 세계대전 뒤에 미국에서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 예술 운동,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다다이즘을 계승한 운동으로 기존의 미적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창조 활동을 지향하여는 움직임)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띄고 평면에 대한 시지각적, 구조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차츰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이룬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국전'에서의 특선(1980년, 1981년)과 '한국미협전'에서의 대상(1978년) 수상은 작업의 초.중기에 매진한 이러한 작업과정의 의미 있는 결실에 따른 공정한 평가로 보여진다.
평론가 오광수씨는 그를 가리켜 "꾸준함 속에서 은밀한 자기 면모를 시도하며, 완성된 자기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모색해온 작가이자 우리 미술에서 가장 실험적인 의식의 소유자로 평가했다. 이렇듯 작가의 모색 과정은 '공간' 연작으로 이어지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작가는 왜 '공간'을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의 중심축으로 삼고서 매진하고 있는지, 공간표현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다루며 그것이 던지는 미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어떤 곳의 어떤 공간에 살고 있는가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어 중요하게 생각된다.
이태현 작가는 1970년대 초 패턴과 반복에 기초한 '미로' 시리즈를 통해 모더니즘 경향과 70년대 중반에 일루전 효과를 표출하게 된다.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경우와는 비교되는 형식논리에 천착한 추상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현실 혹은 삶의 현장을 반영한다는 작가의 무의식적 의지가 표출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 미술비평가 고충환씨는 "이태현의 회화-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2021). 80년대엔 단조롭지만 예리한 선조의 기하학적 공간구조에 천착한다. 어둠을 암시하는 차폐된 공간 속에서의 '열림'을 통하여 한층 선명해진 빛과 어둠과의 극명한 긴장관계, 흑백의 첨예한 대비 관계를~
~시사하는 듯하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씨는 "서양화가 이태현 화면은 마블링이 만들어 내는 비정형적, 비결정적 이미지의 우연성과 그 위색막대가 올려지는 조형성을 드러낸다. 마블링이 만든 화면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흑암의 공간, 혼돈의 공간, 태초의 공간, 카오스의 공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중첩되는 기하학은 원래 수학에서 유일한 것으로서 이성과 질서, 논리와 개념을 의미한다....미술비평가 고충환씨는 또 "이태현의 회화 자기 내면에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다(2012년), 그의 화면에는 긴장만이 묵묵히 흐를 분이다"고 평가했다.
이태현 화가의 '주역 8쾌와 동양적우주관(2003~현재)는 작품들 중에서 우주와 자연의 질서화 된 기호들이 등장한다. '토막의 검은 선조는 다름 아닌 8쾌를 원용한 것이다. 역을 구성하는 64쾌의 기본이 되는 것이 8개의 도형이다. 이를 임의로 연결 지어 독특한 검은 띠의 구조화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기호의 원용이란 차원을 넘어서 동양인의 사유의 체계를 평면이란 공간 속으로 유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이태현의 작업은 그런 관점에서 매우 지적이며,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태현 화가는 2010~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초대동문회장 역임, 2012년 문화예술진흥표창(경기도), 2019년 대한민국미술인상 대상 수상(한국미술협회), 1980년 제1회 개인전(문예진흥미술회관)을 비롯하여 관훈갤러리(84년), 금호미술관(91년), 조선화랑(2000년), 청주예술의전당(2001년), 한원미술관(2010년)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수상경력은 제2, 3, 5회 한국미술대상전 수상, 제26회 국전 입선, 제14회 한국미협전 대상 수상, 제29, 30회 국전 특선, 녹조근정훈장 수훈, 201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개인전=통인화랑(서울 2022년), 영은미술관(경기광주 2021년), 조선일보미술관(서울), 갤러리 그리다(서울 2014년), 한가람미술관 MANIF(서울 2011년), 한원미술관(서울 2010년), 신미술관(청주 2006년), 인사아트센터(서울 2006년), 중화갤러리(도쿄 2003년), 청중예술의 전당(청주 2001년), 조선화랑(서울 2000년), 종로갤러리(서울 1998년, 2000년), 금호미술관(서울 1991년), 백송화랑(서울 1989년), 관훈갤러리(서울 1984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서울 1980년)를 비롯하여 현대미술의 실험전 등 3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자랑스런 예천 출향인 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