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가득한 세상에 빨간 장미가 찬란하게 피어나는 5월이다. 싱그러운 햇살, 감미로운 바람, 라일락과 아카시아 향으로 채워진 5월은 실로 계절의 여왕답다. 자연의 생기가 넘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지는 5월엔 사람들이 더 많이 어울리며 서로를 더없이 위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 행사와 축제들이 5월에 몰려있는 건, 5월이 그만큼 사람들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5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념일은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은 부부 사이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가정의 화목을 독려하기 위해 2007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부부의 날인 5월 21일은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내려온 우리 사회에 부부의 평등 의식을 고취하고,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 지정한 날이 바로 부부의 날이다. 그래서 부부의 날은 부부간의 관계에 더해, 사회 공동체의 안정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는 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부부의 현주소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한국의 조혼인율(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은 1992년 9.6건에서 2025년 4.7건으로 반토막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이에 반해, 2025년 조이혼율은 인구 1천 명당 1.7건으로 집계되었다. 즉, 지난해 한국은 약 3쌍이 결혼하는 동안 1쌍이 이혼한 셈이다. 숫자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에 부부는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서로 다른 화면 속에 갇혀 점차 타인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부부의 문제는 두 사람의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부부관계의 균열은 가장 연약한 아이들의 삶부터 먼저 흔들어 놓는다. 자녀의 신체적·심리적 발달을 돕고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세워줘야 할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상처받고 아파할 수밖에 없다. 부부의 불화는 결국 우리 미래 세대의 희망과 가능성을 앗아간다. 가족은 돌봄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라는 점에서, 건강한 부부관계는 가정의 행복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토록 중요한 부부(夫婦)란 무엇인가? 부부의 순우리말은 ‘가시버시’이다. ‘가시’는 아내를 뜻하고 ‘버시’는 남편을 의미한다. 남편을 앞세운 한자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아내를 먼저 치켜세운 조상들의 지혜와 배려가 스며있다. 아내는 옛말 ‘안해(內解)’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집안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해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남편은 ‘남자 남(男)’과 ‘편할 편(便)’이 합쳐진 용어로 내 삶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부부는 있을 수 없다. 태어난 기질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같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차이가 난다.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나를 몰라주니 미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함께 견디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부부란 서로의 아픔과 약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어루만져 주고, 삶이 흔들릴 때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임을.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둥글게 다듬어 인생이라는 정원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동반자임을. 5월이 아름다운 건 단지 화려해서가 아니다. 꽃과 나무가 각자의 빛깔과 향기를 유지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삶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 갈 때 아름다워진다. 부부의 날, 삶을 동행하는 ‘가시’와 ‘버시’에게 사랑을 건네보길 바란다. [김영인/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