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6억 년 전 탄생한 지구는 오늘날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표는 용암이 들끓는 불바다였고, 오랜 기간 이어진 화산활동으로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질소 등이 분출되면서 원시 대기가 형성되었다. 지구가 식어 가자 대기 중의 수증기는 응결해 비가 되어 내렸고, 그 물이 모여 광대한 바다를 이루었다. 이 바다는 생명의 요람이 되었으며, 약 4억 7천만 년 전 최초의 육상식물이 등장하면서 지구 생태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로부터 약 8천 5백만 년이 흐른 뒤, 줄기가 굵고 높이 자라는 최초의 나무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이 광활한 숲을 이루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생태계가 자리 잡았고, 이후 다양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훗날 인류가 살아갈 지구 환경도 이러한 숲의 오랜 역사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 역사에는 '석탄기'라 불리는 특별한 시기가 있다. 약 3억 5,900만 년 전에 시작된 이 시대에는 지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숲이 번성하였다. 당시 지구는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였고, 광활한 저지대에는 습지가 널리 발달해 있었다. 수명을 다해 쓰러진 거대한 나무들은 산소가 희박한 습지에 잠긴 채 오늘날처럼 빠르게 분해되지 않았다.
목질을 단단하게 하는 리그닌을 분해하는 균류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이렇게 쌓인 식물 유해는 땅속 깊이 묻혀 수천만 년 동안 높은 압력과 열을 받으며 석탄으로 변하였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석탄은 결국 수억 년 전 지구를 뒤덮었던 석송류와 속새류, 양치식물의 숲이 남긴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나무가 대기에서 걷어내어 땅속에 묻어 둔 탄소인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화석연료의 대량 소비를 불러왔다. 수천만 년에 걸쳐 땅속에 갇혀 있던 탄소를 인류는 겨우 200여 년 만에 대기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약 0.04%에 지나지 않지만, 이 미량의 기체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좌우한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와 대형 산불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해지는 것은 그 결과이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시대에 나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숲을 '지구의 허파'라 부르지만 이 표현은 절반만 맞다. 지구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만들어 내는 곳은 숲이 아니라 바다이며, 해양 식물플랑크톤과 해조류가 전체 산소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게다가 성숙한 숲이 만들어 낸 산소는 숲속 생물들의 호흡과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대부분 다시 소비된다. 숲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산소 공장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무의 진정한 역할은 탄소를 붙잡아 두는 데 있다. 나무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자신의 몸을 만든다. 줄기와 가지, 뿌리에 탄소를 차곡차곡 쌓고, 떨어진 잎과 잔뿌리를 통해 발밑의 토양에도 탄소를 넘겨준다. 실제로 숲이 품은 탄소의 상당 부분은 나무가 아니라 그 아래 토양에 저장되어 있다.
시베리아와 캐나다에 넓게 분포한 북방 침엽수림이 지구 최대의 탄소 저장고로 꼽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나무 자체보다 그 아래 얼어붙은 땅속에 막대한 탄소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석탄기의 숲이 했던 일을 오늘의 숲도 규모는 작을지언정 똑같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국토의 60%가 넘는 우리나라의 산림은 헐벗은 산에 온 국민이 나무를 심어 되살려 낸 결과이다. 그러나 그때 심은 나무들이 이제 나이를 먹었다. 나무는 한창 자랄 때 탄소를 가장 왕성하게 흡수하고, 늙으면 그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꾸고 솎아 주며 제때 다시 심는 일, 그 꾸준한 관리가 곧 탄소중립의 실무인 셈이다.
지구 육지의 약 30%는 아직 산림으로 덮여 있다. 열대우림과 북방림뿐 아니라 온대림과 농경지, 초지, 그리고 도시의 가로수 한 그루까지도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지구 환경을 지탱한다. [예천군산림조합장 조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