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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조 박사의 낭구(나무)이야기-회화나무

조영환 산림조합장

기사입력 2026-09-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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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Styphnolobium japonicum)는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심어 가꾼 나무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나무라 하여 길상목(吉祥木)이라 부르기도 했다. 집 안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훌륭한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믿었다. 회화나무는 가지가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모습 때문에 '학자의 기개를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렸다.

 

옛 선비들은 이사를 하면 마을 어귀에 먼저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드러냈다고 한다. 뒷산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쉬나무를 심어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러한 까닭으로 회화나무는 궁궐은 물론 서원과 문묘, 향교와 관아, 이름난 양반 마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심겼다. 회화나무는 단순한 정원수가 아니라 학문과 절개, 길상과 가문의 번영을 상징하는 나무였던 것이다.

 

한자로는 괴목(槐木)이라 하고 그 꽃을 괴화(槐花)라고 하는데, '()'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 또는 '회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한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면 회화나무는 나비를 닮은 연노랑 꽃을 나무 가득 피워낸다. 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가지마다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피어나며, 먼저 핀 꽃들은 산들바람에도 후드득 떨어져 나무 아래에 두툼한 꽃무덤을 이룬다. 회화나무 꽃에는 루틴(rutin)이라는 황색 색소 성분이 들어 있다. 전통적으로 염료 등으로 활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루틴의 혈관 관련 생리활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옛 중국 궁궐에서는 왕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논하는 조정 공간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특히 삼공(三公), 즉 최고위 대신들의 자리를 회화나무로 표시했다는 전통이 전해진다. 이러한 궁궐의 식재 전통은 조선의 궁궐에도 영향을 주었다. 창덕궁 돈화문 안쪽은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외조(外朝)에 해당했고, 그 주변에는 여러 관청이 자리한 궐내각사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의 회화나무는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던 신하와 관료를 상징하는 나무로 이해할 수 있다. 돈화문 내에는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고목들은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은 약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 면사무소 뒤편에는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해 온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1425년 결성현감으로 부임한 정구령이 심었다고 한다. 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의연하게 버텨온 나무의 모습은 여느 고목과는 또 다른 기품을 보여준다. 밑동 둘레가 약 4m, 높이가 약 22m에 이르는 거목이다. 마을 사람들의 구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35년 여름 결성주재소 주임으로 부임한 일본인 야마구치가 이 나무의 가지를 잘랐는데, 그 뒤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또 이후에도 이 나무를 함부로 건드린 일본 사람들이 잇따라 화를 입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항일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70년대에도 한 방위병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를 잘랐다가 다음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천군산림조합장 조영환]

 

 

서산시 해미면의 해미읍성에 있는 회화나무는 또 다른 역사를 품고 있다. 조선 후기 해미는 내포 지역 여러 고을을 관할하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당시 해미의 군사 책임자에게는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천주교 박해가 이어지는 동안 1,000여 명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해미읍성으로 끌려왔다. 천주교 신자들을 회화나무에 철사 줄로 매달아 고문하거나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나무에는 당시의 흔적으로 여겨지는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와 함께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나무로 이름이 높다. 고목은 우리에게 화려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다만 긴 시간의 침묵으로 묻는다. "너희는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비로소 나무의 침묵을 읽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야 할 올바른 기억과 진실에 대한 조용한 당부인지도 모른다.

 

 

 

 

 

정차모 기자 (yc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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